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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영화 『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닙니다. 때론 조용히 스며드는 만남 하나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죠. 영화 『아이』는 그런 작고 섬세한 변화에 주목한 작품입니다. 2021년 개봉한 이 영화는 김향기, 류현경, 염혜란이 출연한 휴먼 드라마로, 보호 종료 아동이라는 낯선 현실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따뜻한 시선을 녹여냈습니다. 『아이』는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특별한 클라이맥스 없이, 아주 현실적인 갈등과 인물들로 극을 채워나가죠. 영화의 제목이자 중심 키워드인 ‘아이’는 갓 태어난 아기 ‘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직 미숙한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세상과 부딪히며 성장하고자 발버둥 칩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관객 스스로의 모습과도 겹쳐지며 묵직한 공감을 만들어냅니다. 감독 김현탁은 첫 장편 연출작에서 사회적 사각지대에 있는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되, 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하지만 깊은 시선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바라보며,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게 만듭니다.
📖 줄거리
20살의 아영(김향기)은 보호 시설에서 자란 ‘보호 종료 아동’입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보호 없이 사회로 내던져진 아영은 살아남기 위해 매일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정규직이 되어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합니다. 아영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고시원에서 홀로 살아가던 중, 어느 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미혼모 ‘영채’(류현경)를 만나게 됩니다. 영채는 이제 갓 돌이 지난 아들 ‘혁’을 홀로 키우며, 동시에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육아와 생계를 동시에 책임지는 그녀에게는 하루하루가 고된 싸움입니다. 결국 영채는 아기를 돌봐줄 사람을 찾게 되고, 그 자리에 아영이 들어오게 됩니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이지만, 아영에게 ‘혁’은 처음으로 마음을 주게 되는 존재가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영과 영채의 관계는, 아기 혁을 사이에 두고 조금씩 가까워지며 변화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코 평탄하지 않은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아영은 스스로를 ‘아이’처럼 느끼며,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애를 씁니다. 영채 또한 미혼모라는 사회적 시선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감정적으로 여유가 없습니다. 그 사이에서 아기 ‘혁’은 순수하고 따뜻한 존재로서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됩니다. 이들의 곁에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선생님’(염혜란)이 있습니다. 그는 아영의 보호자 역할을 맡고 있지만, 시스템 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의 주제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아이』는 이렇게 ‘가족’이라는 말의 정의가 불분명한 세 인물의 관계를 통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타인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의 의미를 서서히 펼쳐 보입니다.
📝 총평
『아이』는 눈에 띄는 드라마틱한 전개나 충격적인 반전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인물들 간의 깊이 있는 감정,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관계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화려한 장치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진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김향기는 이번 영화에서 한층 더 깊어진 연기를 선보입니다. 아영이라는 인물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무표정하지만, 그 안에는 외로움과 분노, 두려움과 희망이 얽혀 있습니다. 김향기는 그 복잡한 감정을 과장 없이, 그러나 뚜렷하게 표현하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류현경 역시 ‘영채’ 역할을 통해,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지만 늘 벼랑 끝에 선 엄마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냅니다. 염혜란은 특유의 인간적인 연기로 영화의 정서적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이』의 가장 큰 미덕은 감정의 진정성입니다. 영화는 ‘보호 종료 아동’이나 ‘미혼모’라는 사회적 키워드를 무겁게 끌고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 안에서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게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어른인가?” “누군가의 삶에 따뜻한 손을 내민 적 있는가?” 이 영화에서 ‘어른’은 나이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상처를 감추는 법을 아는 사람, 책임을 회피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사람,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준비가 된 사람을 어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는 어쩌면, 모든 관객에게 성찰의 시간을 건네는 영화이기도 합니다.